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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재에서 퍼왔습니다.

그렇다면 깨달음이란 무엇일까요? 깨닫는다는 것은 ‘안다는 것’입니다. 다른 엄청난 것이 깨달음이 아니라 우주를 움직이는 법칙을 알았다는 얘기입니다. ‘우주가 제 마음대로 움직이는 줄 알았더니 하나의 어떤 질서에 의해서 움직이더라’ 하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지요. 인간들의 행동이나 인간사회의 모습이 우연인 것 같고, 억울한 희생자도 많은 것 같고, 중구난방인 것 같았는데, 알고 보니까 어떤 법칙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대개 아는 것이 없습니다. 자기한테 닥치는 일도 모르지만 또 사회적으로 전체적으로 닥치는 일에 대해서도 모릅니다. 그 모든 사태에 대해 아는 게 없습니다. 모르니까 과학적으로 규명을 하기도 합니다. 가뭄이 몇 년 이상 계속되면 어떻게 되더라, 어떤 전염병이 나오더라, 하는 걸 과학적으로 규명을 합니다.

그런데 깨달음이란 과학적으로는 몰라도 그냥 아는 것입니다. 왜 계속 가문지 하늘의 뜻이 무엇인지 아는 것입니다. 지식 없이 지혜로 알아지는 것입니다.

깨달으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깨달으면 일단 삶이 달라집니다. 사는 것과 살아지는 것의 차이를 아십니까? ‘산다’는 것은 자신의 의사가 개입된 적극적인 행동이고, ‘살아진다’는 것은 수동적으로 끌려가는 것입니다.

왜 그리고 어떻게 삶이 달라지는가? 깨달으면 첫 번째로 앎이 생깁니다. 깨닫는다는 것은 ‘안다’는 뜻입니다.

무엇을 아는가? 우선 자신에 대해서 알게 됩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뭘 하던 사람인지, 뭘 해야 하는지, 죽으면 어디로 가는지……. 이런 자신에 관한 정보를 알게 됩니다. 자신이 떠나 온 곳이 어디인지, 앞으로 가야 할 곳이, 지금 어떤 시점에 있는지 알게 됩니다. 시작과 끝이 분명해지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이탈하지 않게 됩니다.

우리가 항해를 할 때 떠난 곳이 분명하고 갈 곳이 분명하면 표류를 안 하잖습니까? 그런데 그것이 분명치 않으면 망망대해에 떠서 표류하다가 좌초하게 됩니다. 이런 경우는 사는 것이라고 볼 수가 없습니다. 살아지는 것입니다.

또 세상에 대해서 알게 됩니다. 보통 사람들은 세상공부를 굉장히 많은 밑천을 들여가면서 어렵게 하지요. 시간과 노력과 돈을 들여가면서 어렵게 세상공부를 합니다. 그렇게 공부를 해서 세상을 다 알았느냐 하면 그렇지가 않습니다. 세상의 겉모습은 알 수 있을지언정 세상이 어떤 원리와 구조에 의해서 돌아가는지는 모릅니다. 그러니까 안다고 볼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내가 우주의 일원이다’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내가 인간 세상의 일원일 뿐 아니라 우주의 일원으로서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범위가 넓어지는 것이지요.

이렇게 나에 대해 알고, 세상에 대해 알고, 또 우주에 대해 알면 그 때는 도리를 알게 됩니다. 인간의 도리, 세상의 도리, 우주의 도리를 알게 됩니다. 그런데 그 도리는 우리가 보통 말하는 인간적인 도리와는 좀 다릅니다. 우주의 도리는 따로 습득을 해야 됩니다.

깨달으면 두 번째로 사랑이 생깁니다. 이때의 사랑은 우주의 사랑입니다. 『선계에 가고 싶다』를 보면 우주의 사랑이 어떻다는 말이 나오지 않습니까? 인간적인 사랑, 인간들이 말하는 그런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너와 내가 하나라는 것, 같은 운명체라는 것, 한 나무의 같은 뿌리로부터 나온 열매라는 것, 이런 것을 알 때 진정으로 타인을 궁휼히 여기는 그런 사랑이 나옵니다.

이런 것을 모르면 그 때는 사랑이라고 하지 않고 정(情)이라고 부릅니다. 정은 본능적인 것이지만 사랑은 승화된 감정입니다. 그래서 사랑이 생기면 같은 생명체를 사랑하게 되고, 또 같은 생명체가 아니더라도 자연을 사랑하게 되고,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해 애정을 갖게 됩니다.

깨달으면 세 번째로 자신이 아는 것, 사랑하는 것을 실천할 수 있는 의지를 갖게 됩니다. 아는데 그치지 않고, 또 사랑하는데 그치지 않고, 알고 사랑하는 것을 끝내 실천할 수 있는 의지력이 생기는 것이지요.

그래서 처음에는 하단에서부터 위로 올라오는데 일단 깨닫고 나면 다시 아래로 내려갑니다. 상단에서 앎이 시작되어, 중단에서 사랑이 싹트고, 다시 하단의 의지로써 자신의 사명을 이뤄내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말하는 보통 삶과는 다르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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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님 거듭나기에서 퍼왔습니다.

여러분, <죽이고 버림>이란 참으로 똑바르고 훌륭한 공부법입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은 진짜 제대로 죽이고 버리는 법을 모르십니다. 진짜 제대로 죽이고 버리는 법이란 뭐냐?

그것은 생각으로 죽이고 버리고 무엇을 폭파하고 용광로에 녹이고 이런 것이 아닙니다. 이런 것들은 수행의 아주 초창기에 아상과 에고로 똘똘 뭉친 사람들에게나 잠시 하는 것입니다. 진짜 제대로 죽이고 버린다는 것은 그렇게 죽이고 버려 깨달음이라는 무언가를 얻겠다는 것, <바로 그 생각> 자체가 욕심이요, 번뇌망상임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번뇌망상을 버리고 놓아버리는 것입니다. 이미 부처가 금강경에서 <진정한 법이란 얻을 것도 없고 버릴 것도 없다> 하지 않습니까? 석가께서 아난에게 <내가 법이란 것을 얻은 바가 있느냐?> 하고 반문하지 않으셨습니까? 진리는 이처럼 모든것(나, 진리, 스승, 법, 구도심)을 다 버리는 것입니다. 이 말은 깨달음이란 <생각>으로는 번뇌만 지을 뿐 실제로는 아무 것도 얻을 수가 없으며, 진리의 그 자리는 생각이 끊어지고 내려 놓아진 생각 이전의 본래의 자리란 것입니다.

진리에 대한 제 아무리 훌륭한 <생각>이나 <수행 방법>일지라도 그것은 진리 입장에서 보면 다 <생각>이고 <有爲>라서 일체가 다 번뇌망상일 뿐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내가 구원을 얻겠다는 <생각>으로 어떤 사람들은 평생을 종교에 매여 지내며, 내가 깨달음을 얻겠다는 생각 하나에 매여 평생을 남의 노예가 되어 헛된 형상에 머리를 조아리며 돈과 몸의 수고를 갖다 바치는 것입니다. 참, 머리가 나쁘면 평생 몸이 고생한다는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습니다.

진리란 말이 다만 <진리>일 뿐, 진짜로는 이것만이 진리다랄 게 없습니다. 아니 없다 해도 틀리고 있다 해도 틀립니다. 왜냐하면 참 진리란 있고 없고, 얻고 잃고 이런 분별망상심(양변에 떨어진 생각) 가지고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체의 생각을 넘어서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애꿎은 내 몸이나 생각을 그만 죽이고 버리십시오. 그리고 다만 할일은 모든 생각을 조용히 내려 놓는 것입니다. 어디로 갈 바도 없으며 어디에 머무를 바도 없습니다. 전체가 하나요, 한 마음이요, 나이며 너이며 일체입니다.

그 속에서 한 생각이 일어나 자꾸 이런 저런 분별망상을 짓는 것입니다. 그러니 공부 찾아 어디로 떠난다든지 하는 것이 일체 몽땅 헛짓이라 이 말입니다. 그 생각을 내려 놓는 것이 참으로 자신을 죽이고 버리는 것입니다. <죽이고 버림>에 매이고 걸려들어 그것을 스스로 죽이고 버리지 못하니 계속해서 다람쥐 쳇바퀴 돌리기를 하지만 그 실상을 눈치채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누가 알려줘야 하는데 아무도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러니 본인만 수고로울 수밖에요. 진리는 <있는 그대로>가 진리입니다. 아니, <있는.... >이라 할 때 이미 벌써 그것도 분별망상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생각만 시작하면 이미 개구즉착이라!

일체가 다 마음인데, 일체가 다 위대한 우주 한 생명의  에너지 속 움직임인데 뭐가 따로 있고 말고입니까? 다 우리가 분별하는 것일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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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고통의 기원은 오로지 개별성의 환상입니다. 사람이 우주이고, 완전하며, 있는 전부(All That Is)와 하나이고, 끝없이 영원하다는 것을 각성할 때, 더 이상의 고통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데이비드 호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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